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 (문단 편집) === 극비임무와 격침 === 1945년 7월 16일, [[샌프란시스코]]를 출발한 인디애나폴리스는 [[함장]] 찰스 B. 맥베이 3세 항해[[대령]]의 지휘 아래 승조원 1196명을 태우고, [[미 육군]] [[육군 항공대|항공대]]의 [[B-29]] [[폭격기]]가 출격 대기 중인 티니안 섬으로 향했다. 여기에는 역사를 뒤바꿀 물건인 [[원자폭탄]], [[리틀보이]]의 재료. 고농축 [[우라늄]]을 싣고 있었다. 당시 미 해군은 이 임무를 극비임무로 취급하고 일본 해군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가 단독으로 이동하도록 명령했다. 당연히 이러한 항해가 위험한 줄 잘 아는 맥베이 대령은 [[구축함]] 등 대잠 [[호위함]]을 여러 번 요청했으나 지휘부는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. 그리고 이것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. 1945년 7월 28일, 무사히 화물을 실어나른 인디애나폴리스는 다음 작전을 위해 [[필리핀]] 레이테섬으로 이동을 시작했다. 이미 원폭 재료를 하역하여 비밀 준수가 필요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상부에서 호위함을 붙여주지 않아서 단독으로 항해할 수밖에 없었다. 그리고 7월 30일 새벽. 일본군 잠수함 [[I-58]]이 이를 발견하고 [[어뢰]] 6발을 발사, 2발을 명중시켰다. 이 공격으로 인디애나폴리스호는 치명타를 입었다. 당시 인디애나폴리스는 각종 개장으로 선체 상부 구조물의 무게가 무척이나 무거웠기 때문에, 한 번 무게중심이 깨져 균형을 잃자 불과 12분만에 완전히 넘어가버렸다. 피격 직후 함장은 즉시 구조 신호를 보내고, 승조원들에게 퇴함 명령을 내려, 폭발 직후 사망한 300여 명을 제외한 승조원 대부분이 탈출에 성공했다. 이 시점에서 생존자는 '''900명'''에 가까웠다. 빨리 구조되었더라면 대다수가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.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구조는 오지 않았다. 결국 격침 후 나흘이나 지난 8월 2일, 정기적으로 정찰을 하는 해군의 [[PBY 카탈리나]] [[비행정]]이 처음으로 바다 위에 떠다니는 생존자들을 발견하여 구조하였고, 그 후 약 이틀간 구축함까지 동원되어 생존자를 건져올렸다. 그래서 최종 생존자는 3분의 1 남짓한 '''316명'''으로 줄어들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